drink your tea
5월의 왈
커피나 차 좋아하시나요? 저는 하루에 커피를 한 잔씩은 꼭 마시는데요. 지금도 이 글을 커피를 마시면서 쓰고 있습니다. 커피 마시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할까? 새삼스럽게 떠올려보니 커피도 좋지만 커피를 마실 때 나누는 대화나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혼자서 마실 때는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일기를 쓰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시간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커피는 대화와 연결을 촉진하는 도구일지도 모르겠어요.
drink your tea. 이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그래, 내 차를 마셔야지.’ 라고 심플하게 생각했어요. 며칠 간 이 문장을 곁에 두고 지냈는데, 문득 작은 발견이 있었습니다. 제가 커피를 마실 때 얼마나 많이 ‘다른 것’을 하고 있는지를요. 커피를 마시면서 말을 하고(talking),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을 하고(thinking) 있었어요. 아, 내가 정말 커피를 마신 적(drink)이 있었나? 생존용으로 들이켜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커피 그 자체를 즐긴 적이 있었나?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프랑스에 있는 명상센터인 플럼 빌리지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리트릿에 참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차담을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자신은 앞으로 3개월 정도 밖에 살지 못하고,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지금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그 분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 담담한 어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차를 드세요.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지금 여기에 머무는 방법을 수련을 통해 익히게 되었고 실제로는 11년을 더 사셨다고 하네요.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실 때 일부러 시간을 좀더 여유롭게 냈어요.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 잔에 담긴 커피를 바라보고, 향을 맡고, 한 모금 마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 한 모금, 다음 한 모금, 그렇게 천천히 커피를 즐겼습니다. 이 커피 한 잔이 어떻게해서 나에게 오게 되었을까? 문득 그런 상상이 들더라고요. 저기 계시는 바리스타 님 덕분에 향긋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이 카페가 우리 동네에 있어줘서, 생두를 잘 로스팅 해주셔서, … 커피콩을 재배하는 먼 나라의 농부 님의 땀 방울, … 커피콩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내리쬐어준 고마운 볕과 시원하게 내려준 비, 적당한 바람과 비옥한 토양 … 하하, 제가 너무 멀리 왔나요? 그렇지만 그게 정말 진실인 걸요! 커피가 담긴 잔을 다시 바라봅니다. 까만 커피 안에서 해와 달, 하늘과 비를 만났어요. 억지로 짜내는 감사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고, 정말로 내가 모든 것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drink your tea.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만 마시자.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해보기로 했어요. 커피를 마실 때 커피만 마시는 연습을 하면, 말을 할 때 말만 할 수 있고, 운전을 할 때 운전만 할 수 있고, 걸을 때 걷기만 할 수 있고, 밥 먹을 때 밥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지금 여기가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서 사는지 이 문장을 볼 때마다 깨닫고,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 듣고 있는 말 … 나는 지금 여기에 있나요? 정말로 여기에 있나요?
5월의 왈도 왈이네 지언 님이 손수 그려주셨습니다. 찻잔에 담긴 차 색깔을 보고 제가 “지언아, 이건 밀크티일까?” 물었더니 “하늘의 노을이 비친거야.”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여러분의 찻잔에는 무엇이 담겨있나요. 그림 속 바람을 타고 여행하는 민들레씨도 너무 귀엽네요.
♡ 이달의 왈 사용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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